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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윤후 이사위李士渭 용인이씨, 이수상 李守常

구름에 달

by 碧巖 2016. 2. 2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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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위李士渭 묘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매산리 고매곡 산108-1번지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지후(祗候) 이석(李奭)이고,

할아버지는 판서(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충숙공(忠肅公) 이중인(李中仁)이다.

문효공(文孝公) 전신(全信)의 외손이며,

형은  전서(全書)를 지낸 이사영(李士潁)

아우는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이사이(李士彛)가 있다.

아들은 이백지(李伯持)이다.

 

 

 

 

 

 

 

1360(공민왕 9)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동진사(同進士)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대언(代言)과 개성유후(開城留後)를 역임하였다.

1390(공양왕 2)에 왕이 처음으로 경연(經筵)을 열었을 때 참찬관(參贊官)이 되었으며,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이듬해에는 서해도관찰사(西海道觀察使)가 되어 목민관 직책을 수행하였다.

 

 

이색(李穡)과 친교가 있었으며, 목은집(牧隱集)에 그에 관한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고려가 멸망하자 부친인 이중인이 새로운 왕조에서는 벼슬을 하지 말라고 유언하였지만,

유민들의 청에 따라 이사위는 벼슬길에 나선것을 아쉬워하였다 한다.

 

1396(태조 5)도성(都城) 감역관(監役官)인 전 사재감(司宰監) 박리(朴理)

군인을 시켜서 큰 돌을 운반하게 했는데,

길이 좁아서 전 밀직(密直) 이사위(李士渭) 집의 울타리를 걷어치우니,

사위가 박리를 때리고 욕설을 하였다.”하여 형조에서 상소를 하여 순군옥에 갇혔다가 곧 석방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매산리 고매곡 산108-1번지에 있다.

200934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63호로 지정되었다.

 

 

朝鮮開城留後駒城李公士渭之墓

조선개성유후구성이공사위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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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상李守常 묘역 

 

이수상李守常 묘역 이백지의3남 이사위의 손

 

 

通政大夫 行禮賓寺判官 龍仁李公諱守常 淑夫人竹山朴氏之墓

통정대부 행예빈시판관 용인이공휘수상 숙부인죽산박씨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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