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에서 한국까지 49.5km
대마도에서 후쿠오카까지 138km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挑水, 1860~1926)기념관
조선어 통신원이었던 나카라이 토수이는
1882년 6월 5일부터 7월 23일까지 〈춘향전〉 제일 먼저 번역하여 일본에 알렸으며,
나카라이 도스이의 소설인 〈호사부는 바람(胡砂吹く風)〉은
한 무사가 부산에서 양반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인데 〈춘향전〉과 〈구운몽〉을 많이 인용하였다고 한다.
종의지(宗義智, 소 요시토시) 탄생지
제 19대 대마도주(초대 쓰시마 번주)종의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협조함으로써 초대 쓰시마 번주가 되었다.
조선과는 항상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이후 종의지의 후손들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종의지의 묘 앞에서 논의를 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은 제 1대 대마도주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종의지를 초대 쓰시마 번주로 기준 삼아 역사적 배경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이는 대마도주 가문과 관련된 내용이 조금이라도
한국의 역사와 맞물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의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 1군에 속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지난 2015년도에 방영됐던 징비록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종의지와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강화를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처형이 되었으나
종의지는 대마도주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사유와
조선과의 교섭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를 들어 살아남을 수 있게 있었다.
이후 종의지의 노력으로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재개되어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언급되는1609년의 기유약조를 체결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고
이로써 대마도는 조선과의 무역 권한을 다시금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대마도의 중심도시 이즈하라(嚴原)의 八幡宮神社 팔번궁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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