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주-감사공 강영(康永), 영암 강영, 신천강씨 제주 입도조, 강윤휘(康允暉),강정(康禎),강복(康福),강만(康萬), 조천서원 묘정비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7. 11. 23:39

본문

728x90

감사공 강영監司公 康永, 영암공 강영瀛巖公 康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119

신천강씨 제주 입도조

신천강씨 제주입도조 康永묘로서

강영은 조선 태조의 계비 神德王后의 사촌오라버니로 당시 전라감사를 지냈는데,

조선 태조 7(1398) 왕자의 난으로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방번과 방석이 죽임을 당하면서

신덕왕후의 외척인 강영도 삭탈관직을 당하고 제주로 유배오게 된 것이라 한다

큰 아들 강귀존康貴尊을 육지에 남겨두고 조천읍 함덕리에 정착한 강영은

제주 고씨를 부인으로 맞아 세 아들 강정康, 강복康, 강만康을 낳았다.

조천서원을 세워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유학을 가르쳤다. 묘역 안에 있는 조천서원 건물에 배향됐다.

묘소를 실전하였다가 1929년 신안 김달원 지관의 안내로 묘를 찾았으며,

39세손 강용범, 강정생이 1937년 방묘 앞 제절을 파헤쳐 벼루만한 지석을 발견하여 확인되었으며

지석의 앞면에 信川康永監司 壬寅隱跡於斯’ ‘신천강영감사 임인은적어사’ 

뒷면에 有 禎福萬 三子 有忠義 靑坡志’ ‘유 정복만 삼자 유충의 청파지라고 씌어져 있다고 한다

 



감사공 강영監司公 康永, 영암공 강영瀛巖公 康永

본관은 신천(信川). 는 구방久芳, 는 영암瀛巖 조선조 문과급제 후 한림학사(翰林學士) 전라감사(全羅監司)

할아버지는 대호군 강서(康庶),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강윤휘(康允暉)이다.

신천 강씨의 제주도 입도 시조이다.

1361(공민왕 10)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서북면에 침입하고 함경북도 경성을 점령하였을 때,

호군(護軍)으로서 홍건적을 물리치고 1362(공민왕 11) 경성을 수복한 공으로

1363(공민왕 12) 수복경성일등공신(收復鏡城一等功臣)에 서훈되었다.

1359(공민왕 8) 홍건적 침입 때 전 상호군으로서 적을 격퇴한 공으로

136311월에 기해격주홍적이등공신(己亥擊走紅賊二等功臣)에 서훈되었다.

1373(공민왕 22) 강계만호로서 나하추[納哈出]가 보낸 수행원 10여 명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였는데,

공민왕이 이 소식을 듣고 소환하여 순위부에 감금시켰다.

1376(우왕 2) 왜구가 연산(連山)[지금의 논산시]을 침범하여

최영(崔瑩)[1316~1388], 최공철(崔公哲)[?~1390], 박수년(朴壽年)[?~1355] 등과 더불어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홍산(鴻山)[지금의 부여]에서 대패시켰다.

1377(우왕 3) 왜구가 강화에 침입하자 판개성부사 나세(羅世)[1320~1397], 조사민(趙思民)[?~1378],

이원계(李元桂)[1330~?] 등과 더불어 격퇴하였으며,

왜구가 영광·장사·해주·평주(지금의 황해도 평산) 등에 침입하자 원수(元帥)로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격퇴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1398(태조 7) 8월에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재발할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전라감사를 사임하고 1402(태종 2) 유배나 다름없이 제주에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강영이 도착한 곳은 조천읍 함덕포이며, 이후 제주 고씨를 배필로 맞아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으며,

주민들에게 충효의 도리와 예의범절을 가르쳐 그가 전한 학문과 교화는 여러 지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신덕왕후(神德王后)[?~1396]의 사촌 오빠란 이유로

사건에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며, 1402(태종 2)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資憲大夫行全羅道監司康公永之墓 貞夫人濟州高氏合祔

                          자헌대부행전라도감사강공영지묘 정부인제주고씨합부








                                       資憲大夫行全羅監司康公永墓碣銘

                                       자헌대부행전라감사강공영묘갈명

 




                                     資憲大夫行全羅道監司康公神道碑

                                     자헌대부행전라도감사강공신도비




               조천서원 묘정비                                                                      조천서원

묘역 내의 조천서원에는

득성시조 관정대훈공신 교화성사敎化聖師 강선생(강후康候)

      시조 성골장군 강선생(강호경康虎景,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모인 장화왕후의 증조부 )

득관시조 신성부원군 충렬공 강선생(강지연康之淵)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의 침입이 있자, 고종을 강화도로 몽양갈 때 수행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충렬왕조에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전국의 강씨가 모두 중시조로 추대

입도조 아버지 판도판서 정숙공 강선생(강윤휘康允暉)

입도조 전라도감사 영암 강선생(강영康永) 5위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신천강씨 제주 입도조 감사공 강영의 아들 삼위 제단비

       耕齋先生康公祭壇碑                        農軒先生康公祭壇碑                          蓮堂先生康公祭壇碑

       경재선생강공제단비                        농헌선생강공제단비                          연당선생강공제단비

       경재공 강정(康)                          농헌공 강복(康)                             연당공 강만(康)

開明堂개명당

信川康氏合同慰靈碑

신천강씨합동위령비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