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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모충사, 사라봉공원, 제주의병항쟁기념탑, 순국지사조봉호기념비, 2001제주타임캡슐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7. 1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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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충사 사라봉공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사라봉길 75 (건입동)

사라봉 공원 동남 쪽에 있는 모충사는 제주 주민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조선시대 김만덕 할머니의 구혈의녀탑,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 의병항쟁 기념탑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의병항쟁기념탑

義兵抗爭記念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모충사(慕忠祠) 경내에 있는

제주의 의병 항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세운 탑.

1909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자 제주 지역에서는 고사훈(高仕訓), 이중심(李中心)

격문작성자인 김석윤(金錫允), 김만석(金萬石) 노상옥(盧尙玉), 김재돌(金在乭), 양남석(梁南錫), 조병생(趙丙生),

양만평(梁萬平), 한영근(韓永根) 10여명의 유림들이 1909225일 봉기를 결의하고 격문과 사발통문을 띄웠으나

일제에 곧 진압되고 말았는데, 의병 항쟁 기념탑은 1909년 당시 제주 의병들의 의로운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사라봉 공원에 도민의 이름으로 모충사를 건립하고 그 중앙에 세운 탑이다.

 

방원형 3단계 기층 위에 사람 인()자 모양의 세 줄기 기둥이 20m 높이로 솟구쳐 있고,

그 사이에 또 세 줄기의 보조 기둥이 어우러져 있다.

이는 제주 삼읍(三邑)[제주·정의·대정]의 백성들이 결집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보조 기둥 아래에는 높이 2.5m의 기대석이 삼각형 형태로 서 있는데,

왼쪽에는 의병, 오른쪽에는 태극기를 감아쥐고 만세를 부르는 남녀 학생,

뒤쪽에는 노인 부부가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殉國志士趙鳳鎬記念碑

                                          순국지사조봉호기념비

순국지사 조봉호

殉國志士 趙鳳鎬

생년 1884(고종 21) ~ 1920

항일지사 조봉호를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세운 탑.

어려서 서당을 다녔고 19세 때 서울로 유학하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설립한

기독교계 경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4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귀향하였고 190623세 때 결혼하였다.

경신학교 재학 때 접한 기독교 신앙이 깊어 1908(순종 2) 제주에 온

목사 이기풍(李基豊)과 신자 김재원·홍순흥·김행권·김봉호 등과 함께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야간 영흥학교를 개설하여 주민 교육에도 열성을 다하였다. 1912년 이기풍의 권유로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53·1운동이 제주도에까지 파급되면서 도내 기독교인간에 호응할 것을 협의하던 중

서울에서 밀파된 조선독립희생회(獨立犧牲會) 연락원 김창규(金昌圭)가

상해 임시정부의 선포문과 해외통신문 등을 가지고 제주로 들어와

제주교회 김창국 목사, 조봉호, 최정식 등과 접촉하면서 조

선독립희생회를 조직하여 줄 것과 회원 1인당 2원의 군자금을 모금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조봉호, 김창국, 최정식은 김창규가 가져온 문건들을 등사하여 교회를 통해 배포한 후,

군자금 1만 원의 거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는데, 당시 물가로 2원은 쌀 반 가마니에 해당하는 값이었다.

19197월 송금 사건이 발각됨에 따라 조봉호 등 60여 명이 일제에 검거되었는데,

당시 조봉호는 동지들에게 독립의 길은 멀다라고 말한 후 혼자 책임지겠다며 동지들을 설득하였다.

이후 조봉호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의 판결을 받았으나

복역 중 192042837세를 일기로 대구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1919년 독립군 군자금 모금 운동 사건으로 복역 중 순국한

조봉호 지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도민의 이름으로 1977년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가로, 세로 10m의 십자가 기단 위에 20m 높이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기념비 상부에는 5개의 한국 고유의 완자무늬가 있다.

십자가 기단은 조봉호의 기독교적 애국정신을 뜻하며 완자무늬는 조국의 독립을 의미한다.

 

1919년 기미독립만세를 축복하며 조봉호가 기록한 수첩이 독립기념관에 유품으로 소장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 2천만 민중이 손가락을 깨물어

선혈로 태극기를 그리고 손에 손에 드니 충천의 기개로다.

동포 여러분! 분기하여 독립의 대도에 함께 매진합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구절처럼 의로운 조봉호의 기상은 이제 사라봉 기슭에 우뚝 솟은 기념탑에 남아 역사를 굽어볼 것이다.


                                           2001 제주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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