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지부도탑
경기 유형문화재 제52호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14-3
회암사지부도탑, 경기 유형문화재 제52호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건강을 염려해 그가 입적하기 전에 미리 부도를 만들게 하였다고 하므로
1405년(태종 5) 무학대사가 입적한 해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에서 원형의 탑신석은 고려초에 처음 등장했지만,
그뒤 보이지 않다가 고려말 중국에 유학했던 승려들의 부도에서 다시 유행했다.
따라서 원형 부도의 유행은 중국 사리탑의 영향을 시사해주는 것이며,
이 부도는 조선 초기로 이어진 고려말의 전통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회암사檜巖寺
사적 제128호
1328년(충숙왕 15)(중창)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14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1328년(충숙왕 15)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우왕 4) 나옹(懶翁)이 중건하였다.
12세기에 존재했던 사찰임을 알 수 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이 절의 승려 수는 3,000명에 이르렀으며,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절로,
조선의 태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수도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효령대군(孝寧大君)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1424년(세종 6)의 기록을 보면 이 절에는 250명의 승려가 있었고, 경내가 1만여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1472년(성종 3)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정현조(鄭顯祖)에게 명하여 중창하였으며,
명종 때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교 재흥정책을 펼 때 전국 제일의 수선도량(修禪道場)이 되었으나,
왕후가 죽고 유신(儒臣)들에 의해 나라의 정책이 다시 억불정책으로 선회하자
1565년(명종 20) 사월 초파일에 보우(普雨)가 잡혀 가고 절은 불태워짐으로써 폐허화되었다.
1821년(순조 21)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부도와 탑비가 고의적으로 훼손되었으나
1828년에 조정에서 다시 중수하였으며, 옛터 옆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라는 사호를 계승하였다.
1922년에 봉선사 주지 홍월초(洪月初)가 새로 보전을 짓고 불상을 봉안했으며 지공, 나옹, 무학의 진영을 모셨다.
1976년에는 호선(昊禪)이 큰 법당과 삼성각, 영성각(影聖閣) 등을 중건하였다.
회암사의 정문이었던 일주문(一柱門)으로 들어서면 대웅전이 있었던 곳으로, 주춧돌의 수가 532개나 된다.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387호인 회암사지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
보물 제388호인 회암사지부도
보물 제389호인 회암사지쌍사자석등(檜巖寺址雙獅子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로는 제49호인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인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인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인 회암사지부도탑이 있다
天寶山 檜巖寺 천보산 회암사
楊州天下第一景 양주천하제일경
양주 회암사 조사전
양주 회암사 대웅전
양주 회암사 관음전
양주 회암사 삼성각
용인-경신공주, 경숙공 산남 이애 (慶愼公主, 景肅公 山南 李薆) (0) | 2019.07.24 |
---|---|
양주-회암사 무학대사비, 쌍사자석등, 선각왕사비-보물제387호,나옹선사부도비, 지공선사부도비 (0) | 2019.07.23 |
양주-회암사지檜巖寺址, 사적 제128호 (0) | 2019.07.23 |
옹진-백령도白翎島, 명승8호 두무진頭武津, 두모진頭毛津, (0) | 2019.07.22 |
옹진-대청도大靑島, 옥죽동 모래사막 玉竹洞 沙漠, 대청리 농여해변, 미아동해변 (0) | 2019.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