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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경신공주, 경숙공 산남 이애 (慶愼公主, 景肅公 山南 李薆)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7. 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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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공주, 경숙공 산남 이애(慶愼公主, 景肅公 山南 李薆)

용인시 향토유적 제32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산40-11

벽암 두릉연가

 

上黨府院君 景肅公 李薆 神道碑

상당부원군 경숙공 이애 신도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580-2

 

 

 

 

 

大匡輔國崇祿大夫上黨府院君景肅公神道碑銘

대광보국숭록대부상당부원군경숙공신도비명

 

경숙공 산남 이애(景肅公 山南 李薆)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이애(李薆)[1363~1414]는 조선 초 문신으로

1396년 태조이성계와 정비 신의고황후 한씨 사이의 맏딸인

경신공주(慶愼公主)[  ?  ~1426]와 혼인하여 상당군(上黨君)과 상당후(上黨候)가 되었다.

 

본관은 청주(淸州). ()는 산남(山南),  아명은 백경(伯卿),  초명은 이저(李佇).

아버지는 청허자(淸虛子) 이거이(李居易)이며,  

이애는 태조(太祖)의 부마로서 청평부원군에 봉하여졌다가 공신 명부에서 삭제되었다.

그러나 1400년에 정승으로 임명되었고 영의정까지 지냈다.

 

 

이애(李薆)는 옛 이름이 백경(伯卿)인데

()자가  정종(定宗)의 휘()인 경()과 소리가 서로 비슷하였기 때문에 저()로 고쳤으나,

()자가 또 세자(世子)인 양녕대군의 휘()인 제()와 소리가 서로 비슷하다 하여 애()로 고쳤다.

1400(정종 2)에 태조가 태종을 세자로 삼고 11월에 선위할 때 태종을 도왔다.

1차 2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워 1401(태종 원년)에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나,

1404(태종 4)에 아버지 이거이의 죄 때문에 함주(咸州)로 귀양 갔다가,

1405년 다음해에 이천으로 이배되었고, 또 임강(臨江)으로 옮겼다.

1410(태종 10)에 소환되었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진천(鎭川)에 있다가

1414(태종 14) 52세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1424(세종 6)에 관작이 회복되었다. 시호는 경숙(景肅)이다.

 

 

 

 

 

 

 

 

 

 

 

 

 

 

 

 

 

 

 

 

 

 

경신공주, 경숙공 산남 이애(慶愼公主, 景肅公 山南 李薆)

용인시 향토유적 제32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산40-11

 

 

景肅公之墓 慶愼公主祔右

경숙공지묘 경신공주부우

 

 

      上黨府院君 李薆   太祖大王 一女

      상당부원군 이애   태조대왕 일녀

 

 

 

 

경신공주(慶愼公主)는 태조(太祖)와 신의고왕후(神懿高王后) 한씨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청주이씨 이애(李薆, 13631414)와 혼인을 하였으며,

슬하에 아들 이후(李厚)를 두었다. 1426(세종 8)에 사망하였다.

 

고려 우왕때 이성계가 요동 공격을 위해 출전하자, 최영은 그의 가족들을 볼모로 잡으려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성계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자,

이방원은 포천(抱川) 재벽동(滓甓洞)에 있던 신의왕후와

포천 철현(鐵峴)에 있던 신덕왕후(神德王后)를 동북면으로 피난시켰다.

경신공주는 이때 동생 경선공주(慶善公主)와 함께 재벽동에 있다가

오빠 이방원의 보살핌으로 어머니 신의왕후와 함께 동북면으로 피난을 갔다.

이방원이 이때 두 어머니와 경신공주, 경선공주뿐만 아니라

이방번, 이방석 등 어린 동생들을 피난시켰다는 것으로 보아

경신공주는 태조의 5남 이방원의 동생으로 여겨진다.

    

 

남편 이애(李薆)는 개국공신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이거이(李居易)의 아들로서

원래 이름은 이백경(李伯卿)이었다가 이저(李佇)로 개명한 후 다시 이애(李薆)로 바꾸었다.

이애는 1398(태조 7) 이거이와 함께 이방원을 도와

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상당후(上黨侯)로 봉작되었다.

1401(태종 1) 2차 왕자의 난과

이방간(李芳幹)의 난을 평정함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에 책봉되었다.

 

이애의 집안은 공신 가문이면서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애의 동생 이백강(李伯剛)은 태종의 장녀 정순공주(貞順公主)와 혼인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가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1426(세종 8) 경신공주가 사망하자,

세종은 내관을 보내 조문하도록 하고 제문을 지어 내렸다.

또한 쌀과 콩 각 50석과 종이 2백권을 부조하고, 상등(上等)의 예로 장사를 지내게 하였다.

 

 

 

 

경숙공 산남 이애 景肅公 山南 李薆

 

 

              상당군 묘표전면---      景肅公之庙 경숙공지묘

 

 

                상당군 묘표후면---  上黨君李薆 상당군이애

 

 

慶愼公主 경신공주

 

 

              경신공주 묘표전면---   慶愼公主 경신공주

 

 

              경신공주 묘표후면---   王女李氏 왕녀이씨

 

 

 

 

 

 

석등

 

 

 

 

 

 

 

 

 

 

 

 

 

 

 

 

 

 

 

경신공주, 경숙공 산남 이애(慶愼公主, 景肅公 山南 李薆) 묘역후경

 

 

 

태조이성계(1335~1408)가계도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경숙공 이애(景肅公 李薆) 가계도

증조부 - 이계감李季瑊 : 낭성군(琅城君), 정헌공(正憲公)

   조부 - 이정(李挺, 1297~1361) : 형부상서(刑部尙書), 문간공(文簡公)

아버지 - 이거이(李居易, 1348~1412)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어머니 - 형부상서 최연(崔堧)의 딸

   동생 - 이백관(李伯寬) :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동생 - 이백신(李伯臣) :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동생 - 이백강(李伯剛, 1381~ 1451) : 청평위(淸平尉), 정절공(靖節公), 태종(太宗)의 사위

   동생 이현(李儇)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경숙공 이애(景肅公 李薆)(일명 이저李佇)[1363~1414]

             배위 경신공주(慶愼公主, ? ~ 1426), 태조(太祖)와 신의고황후 한씨의 맏딸

                    장남 - 이비(李俾)

                    차남 - 이후(李厚, ? ~ 1428),  돈녕부판관(敦寧府判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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