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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오창 박동량 신도비(梧窓 朴東亮), 분서 박미 신도비(汾西 朴瀰),금계군 기재 박동량 신도비(錦溪君 寄齋 朴東亮)

구름에 달

by 碧巖 2024. 7. 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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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 박동량 신도비(梧窓 朴東亮),  분서 박미 신도비(汾西 朴瀰)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83-1

潘南朴氏墳山 반남박씨분산

崇禎再壬子之春

숭정재임자지춘(1732년 임자년 봄)

박동량선생묘 및 신도비[朴東亮先生墓─神道碑]

1988년 5월 31일 시흥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기재 박동량(寄齋 朴東亮,1569~1635)은

1590년(선조 23) 22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세상을 떠난 뒤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묘는 군자봉 동쪽 능선에 있으며, 아랫쪽에

아들 금양위 문정공 분서 박미(錦陽尉 文貞公 汾西 朴瀰,1592~1645)의 묘가 있다.

묘역은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 묘비와 망주석 등이 있다.

묘소에서 동북쪽으로 약 250m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데,

옆에 아들 미의 신도비도 함께 자리잡고 있다.

비의 비문은 1641년(인조 19)에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1570~1652)이 지었다.

신도비는 2단의 기단석 위에 석신(石身)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은 형태이다.

첫번째 기단석은 땅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고

두번째 기단석은 높이 1.79m, 폭 1.23m이다.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었는데, 높이 2.45m, 폭 1.13m, 두께 36cm의 규모이다.

이수에는 용 2마리가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 생동감 있게 새겨져 있다.

비문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썼고,

숙종의 장인인 둔촌 민유중(屯村 閔維重,1630~1687)이 전자(篆字)하였다.

비의 추기(追記)는 그의 현손 박필주(朴弼周)가 기록하고,

글씨는 5세손 박사익(朴師益)이 썼다. 1993년 신도비각과 사적비가 건립되었다.

梧窓 朴東亮先生 神道碑 

오창 박동량선생 신도비

 

 

 

 

 

 

汾西朴瀰 神道碑

분서박미 신도비

 

梧窓朴東亮,    汾西 朴瀰 兩先生 事蹟碑

오창박동량,    분서 박미 양선생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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