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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고송정지(枯松亭址), 탄옹고지(炭翁古址),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

구름에 달

by 碧巖 2024. 7. 1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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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송정지(枯松亭址) 

경기도기념물 제101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산58

 

고송정(枯松亭)

고송정지(枯松亭址), 탄옹고지(炭翁古址)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광보(狂甫), 호는 탄옹(炭翁).

할아버지는 백촌 김문기(白村 金文起)이고,

아버지는 영월군수를 지낸 여병재 김현석(如甁齋 金玄錫)이며, 어머니는 동복오씨이다.

김충주(金忠柱)[1444~?]는 할아버지 충의공 백촌 김문기(忠毅公 白村 金文起)와

아버지 영월군수 여병재 김현석(如甁齋 金玄錫)이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자

형님인 김충립(金忠立)과 함께 영읍(嶺邑)의 노비가 되었다.

이에 김충주 형제는 이름을 김철주(金哲柱), 김원희(金元希)로 고치고 잠적하였다.

김충주는 형과 헤어져 태백산 아래 신두곡(新杜谷)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김충주의 행적을 의심하자

다시 안산군 광곡리(廣谷里)(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너빌마을)에 이르러 은거하였다.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만들어 파는 것을 업으로 삼았으며,

스스로 아호를 탄옹(炭翁)이라 하였다.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마의(麻衣)에 평립(平笠)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집 뒤에는 한 개의 바위와 그 아래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소나무와 더불어 마음을 달랬고 단종에 대한 충성심이 변할 때마다

바위에 올라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다.

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명에 숨진 것을 몹시 슬퍼하여

아침저녁으로 소나무 곁에서 눈물을 흘리자 이에 소나무도 말라 죽었는데,

그 뒤 1827년(순조 27)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의 9세손 김처일(金處一,1779~1853)이

그 자리에 고송정(枯松亭)이란 정자를 지었고 바위를 망월암(望越岩)이라 하였다.

1851년(철종 2) 김처일(金處一)의 아우 김처락(金處樂,1796~1872)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힘을 모아

이곳 광곡리(현재 화정동) 너빌마을에 세덕사(世德祠)를 세워 김충주(金忠柱)의 효행을 추모하였다.

1852년에는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에게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1870년(고종7) 정려가 내려져 오정각에 봉안되었다.

고송정(枯松亭)

고송정(枯松亭) 주변의 보호수  490여년과  510여년의  느티나무 

고송정(枯松亭)주위의 보호수 370여년생 향나무 

탄옹고지(炭翁古址)

탄옹고지(炭翁古址)

炭翁公墓所 望越岩 入口

탄옹공묘소 망월암 입구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

贈 童蒙敎官金公忠柱之墓 贈令人安定羅氏祔左

증 동몽교관김공충주지묘 증영인안정나씨부좌

탄옹 김충주 묘역 후경

 

 

 

성균진사 김영성(金永聲)

成均進士金寧金公永聲之墓 配宜人礪山宋氏祔左

성균진사김녕김공영성지묘 배의인여산송씨부좌

 

돈녕부도정 김재우(金在雨)

通政大夫敦寧府都正金寧金公在雨之墓 配淑夫人平山申氏祔左

통정대부돈녕부도정김녕김공재우지묘 배숙부인평산신씨부좌

淑夫人全州崔氏之墓  숙부인전주최씨지묘

//김녕김씨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 가계//

고조부 호조판서 증 영의정 김순(金順,1341~?)

증조부 이조판서 증 영의정 김관(金觀)

   조부 충의공 백촌 김문기(忠毅公 白村 金文起,1399~1456)

   부친 영월군수 여병재 김현석(如甁齋 金玄錫,1420~1456)

           형님 사헌부장령 아한 김충립(啞漢 金忠立)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1444~ ? )

                   자 한천 김경남(寒泉 金景南)

                           손자 성지당 김약전(姓支堂 金約前)

 

                          성균진사 김영성(金永聲)

                          돈녕부도정 김재우(金在雨)

 

                          9세손 진사 김처일(金處一,1779~1853)

                          9세손 김처락(金處樂,1796~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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