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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오정각(五旌閣), 화정동 오정각(五旌閣)

구름에 달

by 碧巖 2024. 7. 1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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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각(五旌閣)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오정각길 35 (화정동 29)

 

오정각(五旌閣)

정문(旌門)이란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말한다.

조선 세조2년(1456) 단종복위(端宗復位)의 모의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여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참형을 당한

충의공 김문기(忠毅公 金文起)의 충절(忠節)과

충의공의 아들 김현석(金玄錫)의 충신정문(忠臣旌問)

그리고 충의공의 손자인 김충주(金忠柱),

증손자인 김경남(金景南),  현손인 김약전(金約前) 세 사람의

효자정문(孝子旌問)을 모신 곳으로 오정각(五旌閣)이라 불리고 있다.

현재의 이 건물은 조선 고종 7년(1870)에

후손들이 초익공(初翼工)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오세충효 정각(五世忠孝 旌閣)을 건립한 뒤

국가 보조와 종친들의 성금으로 몇 차례 중수하여 보전하고 있다.

 

五旌閣重修紀念碑 오정각중수기념비

 

충의공 김문기(忠毅公 金文起)는 세종 8년(1426)에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처 세조 원년에 공조판서겸 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가 되었으나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할 때 병력 동원을 책임진 사실이 적발되어 처형되었다.

그 후 영조 33년에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 아들 김현석(金玄錫)은 영월군수로 재임 중 아버지와 같이 순절하였다.

손자인 김충주(金忠柱)는 형인 김충립(金忠立)과 함께 노비가 되어

상주(尙州)로 가는 도중 삼수점(三水店)에서 도망하여

이곳 현재의 화정동 마하산에 숨어 숯을 구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후손들은 선조인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가

망월암에 올라가 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과 할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일생을 보내어 그 곳에 있던 소나무가 말라죽었다 하여

그가 살던 집터에 고송정(枯松亭)을 지었다.

김충주(金忠柱)의 아들인 김경남(金景南)과

손자인 김약전(金約前)도 효성이 지극하여 3대가 효자로 일컬어져 왔다.

오정각(五旌閣)

오세충효(五世忠孝)

 

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 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事 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 판의금부사지경연춘추관사 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

知成均館事 世孫貳師 行資憲大夫吏曹判書兼 五衛都摠府都摠管 諡忠毅公金文起之門

지성균관사 세손이사 행자헌대부이조판서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시충의공김문기지문

 

//김녕김씨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 가계//

고조부 호조판서 증 영의정 김순(金順,1341~?)

증조부 이조판서 증 영의정 김관(金觀)

   조부 충의공 백촌 김문기(忠毅公 白村 金文起,1399~1456)

   부친 영월군수 여병재 김현석(如甁齋 金玄錫,1420~1456)

           형님 사헌부장령 아한 김충립(啞漢 金忠立)

           탄옹 김충주(炭翁 金忠柱,1444~ ? )

                   자 한천 김경남(寒泉 金景南)

                            손자 성지당 김약전(姓支堂 金約前)

 

                            9세손 진사 김처일(金處一,1779~1853)

                            9세손 김처락(金處樂,1796~1872)

 

성균진사 김영성(金永聲)

돈녕부도정 김재우(金在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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