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보령-남포 보령파 제각, 양무공 오자경(襄武公 吳子慶), 이조판서 오연찰(吳延札), 사옹원직장 오희(吳禧),사릉참봉 오병화(吳炳和), 오병제(吳炳濟) 공적비

구름에 달

by 碧巖 2026. 5. 5. 22:57

본문

728x90

보성오씨 양무공 남포 보령파  이조판서 예문제학 오연찰(吳延札)

충남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 산21-1

숭모재

보성 오씨(寶城吳氏)는 오현필(吳賢弼)을 시조로 한다.

1216년(고려 고종 3)에 거란군을 토평(討平)한 공으로

오현필의 큰형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지고,

둘째 형 오현좌(吳賢佐)는 동복군(同福君)에,

오현필은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3형제가 파를 형성하여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후손들이 관향을 보성으로 하였다.

 

3세손 오한경(吳漢卿,1242~1314)은 고려 원종 대에 감시(監試)에 장원 급제하여

동궁시학(東宮侍學)에 선발되었고,

충선왕 대에 삼사우사를 거쳐 첨의찬성사를 지냈고,

문온공(文溫公)에 봉해졌다.

6세손 오사충(吳思忠,1327~1406)은 대사성과 좌상시를 지냈으며,

조선 개국 후 좌명개국 삼등공신으로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에 추증되었고,

중추원부사, 정당문학,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를 지내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13세손 평안중도 절도사를 지낸

보산군 양무공 오자경(寶山君 襄武公 吳子慶,1414~1478)의

둘째 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낸 오연찰(吳延札)은 남포파의 중시조이다.

오연찰의 장자 사옹원직장 오희(吳希)는 연산군 때 정치가 혼란함에 따라

더 이상 한양에서 생활한 상황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자손을 보전하기 위해

보령군 청라면 나원리 월치(月峙)로 은거하면서 보성오씨 보령 입향조가 된다.

 

보령에서 3대가 음직(蔭職)으로 출사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당시 권세가의 극성을 피하여 18세손 오영필(吳永弼)이 청라면을 떠나

보령 남포현 고읍면 신기리에 정착하여 가난한 사족으로 세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23세손 오형(吳炯)은 황산찰방(黃山察訪)으로 수안파,

오헌(吳巘)이 외성파, 오영(吳詠)이 내성파, 오인(吳認)이 평장파를 형성하여

보령 남포현 지역에서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가문의 위상이 달라지게 되었다.

寶城吳氏 襄武公 藍浦 保寧派 祭閣

보성오씨  양무공  남포  보령파  제각

 

 

寶城吳公炳濟功績碑

보성오공병제공적비

오병제(吳炳濟) 공적비

예문제학공 제각 건립기

 

 

 

이조판서 예문제학 오연찰(吳延札) 신도비

자헌대부행이조판서보성오공신도비명

法學博士 前 文敎部長官南平文鴻柱 謹撰

법학박사 전 문교부장관 남평문홍주 근찬

前財務部長官國會議員 慶州金龍煥 謹並 篆書

전재무부장관 국회의원 경주김용환 근병 전서

 

嘉善大夫行侍講院兼輔德原任 奎章閣直學士 禮安李貞烈撰

가선대부 행시강원겸보덕원임 규장각직학사 예안이정렬찬

十四世孫 敏植 謹書幷篆

십사세손 민식 근서병전

 

//보성오씨 양무공 남포 보령파 통덕랑 오영필(吳永弼) 가계//

5대조 평안중도절도사 보산군 양무공 오자경(寶山君 襄武公 吳子慶)

고조부 이조판서 예문제학 오연찰(吳延札)

증조부 사옹원직장 오희(吳希), 보령 입향조

조부 현신교위 오맹지(吳孟沚)

부친 형조참의 오치인(吳致仁)

       통덕랑 오영필(吳永弼)

             사릉참봉 오병화(吳炳和)

 

故思陵參奉吳炳和記功碑 

고사릉참봉 오병화기공비

사릉참봉 오병화(吳炳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