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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양진당 정유(養眞堂 鄭裕),의흥현감 정희린(鄭姬鄰), 정여(鄭如), 통진현감 정수강(鄭守綱),온양정씨,양진당 온계군 정유(養眞堂 溫溪君 鄭裕)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1. 2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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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온계군 정유(養眞堂 溫溪君 鄭裕)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408-1번지

 

 

 

양진당 온계군 정유(鄭裕)

1503(연산군 9)1566(명종 2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는 공작(公綽). 양진당(養眞堂), 보진당(湺眞堂)

정오(鄭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이손(鄭二孫)이고,

아버지는 통진현감 정수강(鄭壽綱)이며, 어머니는 진경원(陳敬源)의 딸이다.

 

1528(중종 23) 26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3734세에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38년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뽑혔다

이후 승문원정자·저작·박사·전적을 지낸 후,  호조좌랑·예조좌랑을 거쳐. 충청도도사, 공조정랑·집의를 지내고,

곧 직강이 되어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사섬시·장악원·내자시의 정을 역임하였다.

1546(명종 1) 사인을 거쳐, 춘추관기사관으로 중종실록·인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사간이 되었다가 대호군으로 옮겼다. 홍문관에 들어가 교리·부응교를 지냈다.

1551년 직제학에서 통정대부로 승진되어 부제학을 거쳐

1554년 대사간에 이르고 그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5년 대사헌이 된 뒤 이어 한성부윤·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나 신병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삼사(三司)를 두루 거쳐 오랫동안 경연(經筵)에서 학문과 제왕의 길을 강론, 왕의 총애를 받았다.

  

 

묘비문의 글씨는 1587년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 석봉 한호(石峯 韓濩1543~1605)

앞면 큰 글씨와 뒷면 작은 글씨를 모두 쓴 것이다.

그리고 비문은 명재상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1542-1607)이 찬하고,

전액은 두암 김응남(斗巖 金應南1546-1598)이 썼다.

한호의 나이 45세 때 작품으로 앞면의 큰 글씨는 특유의 단정한 해서체이며,

뒷면의 작은 글씨는 활달한 행서로 쓴 귀중한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1587(선조 20)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에 건립된 정희린(鄭姬隣)의 묘갈의 원본은 수원박물관에 있다.

 정유는 좌의정(左議政) 한확(韓確)의 현손(玄孫)인,   주부(主簿) 한수성(韓守性)의 딸과 혼인하여 2남을 두었다.

 

 

 

 

 

 

 

 

 

                                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鄭公裕之墓 貞夫人淸州韓氏祔

                                가선대부사헌부대사헌정공유지묘 정부인청주한씨부

 

 

묘비석의 원본은 수원박물관 보관전시중

 

大司憲鄭公墓碣銘

대사헌정공묘갈명

有明朝鮮國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鄭公墓碣銘幷序

유명조선국가선대부사헌부대사헌정공묘갈명병서

資憲大夫行同知中樞府事 柳成龍撰

자헌대부행동지중추부사 유성룡찬

嘉善大夫行承政院都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藝文官直提學 金應南 篆

가선대부행승정원도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예문관직제학 김응남 전

活人署別提承訓郞 韓濩書

활인서별제승훈랑 한호서

 

 

 

 

 

 

 

 

 

 

 

  정유선생묘소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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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생 장자 의흥현감 정희린

 

 

의흥현감 정희린(鄭姬鄰)

정희린(1532~1583)은 온양인(溫陽人)으로 대사헌 정유(鄭裕)의 장자이다.

1569(선조 3)에 사포서별제(司圃暑別提)로 관직을 시작하여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거창(居昌의흥(義興)현감을 역임하였다.

비문은 간결하여 정희린의 선조내력과 관력, 가족사항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묘갈도 석봉  한호(韓濩)1587년에 앞면과 뒷면을 모두 썼다.

비문은 문장가로 이름 높던

호봉(壺峰) 송언신(壺峰 宋言愼1542-1612)이 찬하였고, 전액도 함께 썼다.

1587년 정유선생 사후21년에, 그 아들 정희린 사후 4년에 묘갈을 세운 것으로 알 수 있다.

 

 

 

 

通訓大夫 行義興縣監 鄭公姬鄰之墓 淑人全州李氏祔

통훈대부 행의흥현감 정공희린지묘 숙인전주이씨부

 

 

                                  묘비석 원본 수원박물관 보관 전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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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정유선생 손자이며 정희린의 장자 정여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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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정유선생 부친 정수강묘소

 

통진현감 정수강(鄭守綱)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연풍 현감(延豐縣監) 정이손(鄭二孫)의 아들이며,

온계군(溫溪君) 정유(鄭裕)의 아버지로,

통진 현감(通津縣監)을 지냈으며,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行中直大夫通津縣監鄭公守綱之墓  贈貞夫人臨陂陳氏祔葬

       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행중직대부통진현감정공수강지묘  증정부인임피진씨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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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생 7대손 묘소 ??

 

 

 

//온양정씨  대사헌 양진당 온계군 정유(養眞堂 溫溪君 鄭裕) 가계//

 5대조 보승낭장전력부위 정주(鄭珠), 고려말 (保勝郎將展力副尉)

 4대조 신호위(神虎衛) 정종(鄭從)

증조부 성균생원 정오(鄭悟)

   조부 연풍현감 정이손(鄭二孫)

   부친 통진현감 정수강(鄭壽綱)

   모친 임피진씨, 진경원(陳敬源)의 따님.

            대사헌 양진당 온계군 정유(養眞堂 溫溪君 鄭裕)

            배위 정부인 청주한씨, 한수성(韓守性)의 따님-양절공 한확(韓確)의 현손

                    자 의흥현감 정희린(鄭姬鄰)

                            손자 장사랑 정여(鄭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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