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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문광공 허백당 홍귀달 文匡公 虛白堂 洪貴達, 홍귀달선생신도비 洪貴達先生神道碑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8. 2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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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공 허백당 홍귀달선생 신도비 文匡公 虛白堂 洪貴達先生 神道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2

경북 문경시 영순면 영풍로 848-5(율곡리 산5번지)

 

 

 

 

 

 

홍귀달선생신도비 洪貴達先生神道碑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22

건립 1534(중종 29)

홍귀달은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춘추관 편수관(編修官)으로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98(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 10여건에 달하는 왕의 난정을 간하다가 좌천되었고,

1504(연산군 10)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교살된 문신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 후 복관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숙종 때 문광(文匡)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 비는 1534(중종 29)에 건립되었는데,

홍문관 대제학 남곤(南袞)이 찬하고,

5째 아들 홍언국(洪彦國)이 글을 썼다.

 

비문은 판독이 어려우나 부림홍씨(缶林洪氏) 세덕록(世德錄)에 그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비는 전체 높이가 374로서, 귀부·비신·이수의 3부분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귀부와 이수의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

 

 

 

 

 

 

 

 

 

 

 

 

 

 

 

 

 

 

 

 

 

 

 

 

 

 

 

 

 

 

 

 

문광공 허백당 홍귀달 묘소 文匡公 虛白堂 洪貴達墓所

 

 

 

 

문광공 허백당 홍귀달 文匡公 虛白堂 洪貴達

1438(세종20) ~ 1504(연산군10)

 

본관은 부림(缶林) 또는 부계缶溪,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사재감정 홍순(洪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득우(洪得禹)이고,

아버지는 증 판서 홍효손(洪孝孫)이며, 어머니는 노집(盧緝)의 딸이다.

 

1460(세조 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464년 겸예문에 등용, 예문관봉교로 승직하였다.

1466년 설서가 되고 선전관을 겸하였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조정랑에 승직하면서 예문관응교를 겸하였다. 

1469(예종 1) 교리가 되었다가 장령이 되니 조정의 글이 모두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사예가 되었을 때 외직인 영천군수로 전출하게 되자,

        그의 글재주를 아낀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의 반대로 홍문관전한과 예문관전한이 되었다.

        이어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직제학·동부승지를 거쳐 충청감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이어 도승지로 복직했으나,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를 왕비에서 일반인으로 폐하고 쫓아내는 모의에 반대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1481(성종 12)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3국조오례의주(國朝五禮儀註)를 개정하고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그 뒤 형조와 이조의 참판을 거쳐, 경주부윤·대사성·지중추부사·대제학·대사헌·우참찬·이조판서·호조판서 겸 동지경연춘추관사 등을 역임한 뒤 좌참찬이 되었다.

 

1498(연산군 4) 무오사화 직전에 열 가지 폐단을 지적한 글을 왕에게 간하다가 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다.

1500년 왕명에 따라 속국조보감(續國朝寶鑑)·역대명감(歷代名鑑)을 편찬하고,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504년 손녀(洪彦國의 딸)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거역해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 도중 단천에서 교살(絞殺)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했으며, 성격이 강직해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모두들 몸을 조심하라 했으나, 태연히 말하기를

내가 국은을 두터이 입고 이제 늙었으니 죽어도 원통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중종반정 후 신원(伸寃: 원통함을 풀어버림)되었다.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

의흥의 양산서원(陽山書院)에 제향되고,

저서로는 허백정문집(虛白亭文集)이 있다.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 知經筵事判義禁府事行正憲大夫議政府左參贊兼 同知經筵事弘文館大提學

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 지경연사판의금부사행정헌대부의정부좌참찬겸 동지경연사홍문관대제학

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事義禁府事成均館事 諡文匡公洪貴達之墓 贈貞敬夫人行貞夫人商山金氏之墓

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의금부사성균관사 시문광공홍귀달지묘 증정경부인행정부인상산김씨지묘

 

 

 

 

 

 

 

 

허백당 홍귀달의 부친 홍효손묘소

 

 

 

 

                            贈資憲大夫 兵曹判書缶溪洪公孝孫之墓

                            증자헌대부 병조판서부계홍공효손지묘

 

 

 

 

 

 

 

 

 

 

 

 

 

 

 

 

 

 

//허백당 홍귀달가계도//

   증조부 홍순(洪淳) 사재감정

할아버지 홍득우(洪得禹) 증 이조참판

   아버지 홍효손(洪孝孫)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

   어머니 안강노씨安康盧氏, 부사직 노집(盧緝)의 딸.

       문광공 허백당 홍귀달 文匡公 虛白堂 洪貴達

        배위 商山金氏 사정김숙정 司正金淑貞의 딸

                  홍언필洪彦弼 조졸

                  홍언승洪彦昇 현감

                  홍언방洪彦邦 박사, 언양현감(彦陽縣監)

                  홍언충洪彦忠 홍문관 교리, 이조좌랑, 성균관 직강(直講)

                           홍망지洪望之

                  홍언국洪彦國 성균진사

 

                                                                                                                                                                              벽암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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