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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애일당(愛日堂), 강각(江閣), 농암선생정대구장(聾巖先生亭臺舊庄)

구름에 달

by 碧巖 2022. 12.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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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일당(愛日堂), 강각(江閣), 농암각자(聾巖刻字)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604

 

애일당(愛日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1533년(중종 28)건립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533년(중종 28)  67세의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가 

94세의 아버지 이흠(李欽)과 92세의 숙부와 곤양 소모장을 지낸 82세의 외숙부 김집(金緝)을 중심으로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 하루하루를 즐겁게 소일할 수 있도록 경로당을 짓고, 당호를 애일당(愛日堂)이라 하였다.

전열량(前列樑)은 이중량(二重樑)이고, 종량(宗樑)은 홍예보로 되어 있는 8칸집이다.

건물내에는 화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퇴계 이황(退溪 李滉),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등의

시문편액(詩文扁額)이 걸려 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도산면 분천리 산11-1번지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에 의한 수몰로 분천리 산11-17번지로 이전되었다가, 2004~2005년 ‘농암종택 복원사업’이 도산면 가송리에서 추진됨에 따라 애일당이 가송리의 농암종택 내부로 이전하였다.

江閣강각

강각은 신선들의 집이다. 신선들이 신선주를 마신 집이다.

술잔에 술을 부어 뗏목에 올려 띄우니 퇴계가 아래에서 웃으면서 받아 마시기를 왕복 서너 차례,”

-분강의 유상곡수(流觴曲水), 신선들의 높은 모임 전설이 되려니, 강각, 퇴계의 농암, 금계행장 저술

유상곡수가 끝난 밤, 강각에 유숙한 신선들이 신선주를 마시며 노래를 창작했다.

그 노래가 '농암 어부가'이다. 그래서 전설이 되었다.

 

1549년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 당시 83세)는 분강 유상곡수 2년 후 어부가를 창작했다.

세 명의 합작이다.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1517~1563, 당시33세)이 이때 어부가 원본을 결정적으로 구해 왔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당시49세) 역시 자료 수집하며 비상한 관심을 기우렸다.

어부단가 5장, 어부장가 9장은 이렇게 탄생했다. 농암이 서문을 쓰고, 퇴계가 발문을 썼다.

그 글에 “아! 선생은 바라보면 신선 같아 진실로 강호(江湖)의 진락(眞樂)을 얻었다”고 했다.

후일, 자신은 ‘그 진락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강호’는 아름다운 자연이며, ‘진락’은 지극한 자연사랑이다. 그 사랑의 함축이 류상곡수의 풍류이다.

‘류상곡수(流觴曲水)’는 지난날 최고품격의 풍류모형이었고 자연사랑이었다.

그리하여 농암은 관료적 문학이 성행할 때 ‘강호지미(江湖之美)’와 ‘강호지락(江湖之樂)’의 새로운 문학지평을 열었다.

 

‘강각(江閣)’은 1544년, 분강 강가에 농암이 지은 집으로, ‘영남가단’의 모태가 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곳에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뿐 아니라

모재 김안국(慕齋 金安國), 화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온계 이해(溫溪 李瀣),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송강 조사수(松岡 趙士秀), 퇴휴 임내신(退休 任鼐臣) 등의 많은 명현들이 함께했다.

그런 분위기의 풍류에서 나온 작품이 ‘농암 어부가’였다. 어부단가 2장은 이러하다.

 

구버는 千尋綠水 도라보니 萬疊靑山 굽어보면 천길 파란 물, 돌아보면 겹겹 푸른 산

十丈紅塵이 언매나 가롓는고 열 길 티끌 세상에 얼마나 가렸던가

江湖애 月白하거든 더옥 無心하얘라 강호에 달 밝아 오니 더욱 무심하여라

애일당(愛日堂)

강각(江閣)

농암각자(聾巖刻字)

농암선생정대구장(聾巖先生亭臺舊庄)

농암(聾巖)

선생(先生)

정대(亭臺)

구장(舊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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